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유토리 교육 (문단 편집) == 일본의 [[전인 교육]] 정책 == '''{{{+1 ゆとり教育 / 유토리 교육}}}''' [[일본]]에서 개성을 강조하며 '여유 있는 교육'을 교육 목표로 삼고 제창'''되었던''' 교육 방식. 쉽게 말해서 일본식 [[전인 교육]] 정책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전후기의 영향으로 일본의 교육과정은 미국의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1960~70년대의 교육과정은 주입식 교육이 주류였다.[* 이는 미국의 교육과정이 [[스푸트니크 쇼크]]로 인해서 한 동안 대세를 이루었던 진보주의 교육대신에 학업위주 교육으로 변화한것의 영향을 받았다. ] 또한 고도경제성장에 따라 교육열도 과열됨에 따라 대학진학률이 급속히 상승하는 기조를 타게 되었다. 이러한 교육정책과 사회 풍조로 인해 일본의 교과과정은 신칸센 교육이라 볼릴정도로 지나치게 빨리 진도를 나가는 경향이 있었고, 이 때문에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교육에서 낙오시켜서 자습과 사교육이 불가피해지는 등 교사와 학생들의 업무와 학업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이 당시까지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패서 가르쳐야된다는 식의 마인드(일명 [[관리교육]])가 강하게 남은 시절이었기 때문에 체벌남용도 심각했던 시대였고, 비행청소년들은 늘어나는 등 교내폭력 문제도 심각했다. [* 일본에서 학교체벌이 1947년에 금지되었지만, 이는 법적으로만 그렇고 실제로는 1980년대까지 학교체벌이 많이 행해졌다. 그러나 체벌로 인한 사망사고나 소송들이 이어지자 1990년대에 대다수 학교에서 학교체벌 금지가 정착된것이다. ] 이로 인해서 1970년대에 기존의 교과과정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학업부담을 줄이고 창의성을 늘리자는 제안을 일교조에서 제시하기 시작하였으며, 제법 호응을 얻었다. 그 결과로 1970년대 후반부터 수업시간의 단축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때는 단순히 수업시간을 단축하는 수준에 머무는 수준이었지만, 유토리 교육에 대한 주장이 일본 교육정책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것은 의외로 보수색이 짙은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때였다. 이 당시에는 주입식 교육, 관리교육을 폈음에도 교내폭력과 비행청소년 증가가 지속되자 기존의 주입직 교육, 관리교육의 한계를 중앙부처에서도 인식하기 시작했던것이었다. 또한 레이건과 대처의 영향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펼쳐지기 시작하면서 일본도 영향을 받아 공교육의 민영화, 자유화라는 기조하에서 임시 교육 심의회를 설치했는데 그 영향으로 전인교육에 대한 논의가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교육정책이 하루아침에 뒤바뀐것은 아니라지만, 이 시기부터 학업부담을 줄이는 식의 정책이 시행되었고, 1992년부터 [[토요휴업제]]를 부분 실시하였다. 그리고 하시모토 류타로와 오부치 게이조 총리 시대에 유토리 교육에 대한 주장이 완전히 반영되었고, 2002년에 주5일제 수입을 완전 실현하였다. 기존 [[주입식 교육]] 및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벗어나, '사고력', '표현력', '남에 대한 배려' 등을 배양하기 위해 '종합학습시간'을 제정했다. '종합학습시간'은 초·중학교 '''교과 내용 30% 감소''', 전체 수업시간 10% 감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